대법원 전원합의체 vs 소부 선고,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이 던지는 질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이 대법원에 접수된 지 1년 2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서 다룰지, 아니면 소부에서 판결할지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례적으로 오랜 심리 지연은 법조계 안팎의 주목을 끌고 있으며, 이 사안을 통해 대법원의 재판 구조와 역할, 그리고 판결의 파급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대법원의 두 얼굴: 전원합의체와 소부

대법원은 두 가지 방식으로 상고 사건을 처리합니다. 바로 전원합의체(전합)와 소부입니다. 소부는 대법관 3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재판부로, 대부분의 사건이 이곳에서 처리됩니다. 반면 전원합의체는 말 그대로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최고 수준의 심리 기구로, 판례 변경 가능성,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 법률적 쟁점이 복잡한 사건에 주로 회부됩니다.

소부 선고는 비교적 빠르고 간결한 처리가 가능하지만, 전원합의체는 판결을 내리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공개변론, 다양한 의견 수렴 등 절차가 까다롭습니다. 그만큼 무게감 있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왜 아직 결정하지 못했을까?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이 대법원에 접수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전합 여부조차 결정되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이는 이 사건의 복합성과 사회적 상징성, 법리적 쟁점이 얽혀 있다는 방증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이혼 문제가 아닙니다. 초고액의 재산분할, 위자료 문제, 혼인 파탄 책임, 사생활 및 명예 보호, 경영권과의 연계성 등 복합적 쟁점이 얽혀 있습니다. 기존 판례로는 단정짓기 어려운 측면이 많고, 사회적 관심 또한 큽니다.

이 때문에 대법원 내부에서도 전합 회부 여부를 두고 신중하게 의견 조율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판례 변경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할 정도로 법적 쟁점이 크다면, 전합 회부는 불가피해집니다.


전합 선고가 가지는 의미

전합에서 선고가 내려진다는 것은 해당 사건이 단지 개인 간의 분쟁을 넘어 '법률 해석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판결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향후 유사 사건의 판결 방향을 좌우할 수 있고, 새로운 사회적 기준을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고액 재산가의 이혼에서 어떤 방식으로 재산을 나누는 것이 공정한가? 위자료 산정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배우자의 사회적 기여와 기업 경영 사이의 연관성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들이 모두 전합 판결을 통해 해석될 수 있습니다.

또한 전합은 여러 대법관이 찬반 의견을 나눌 수 있기 때문에, 판결문에는 다수 의견뿐만 아니라 반대 의견, 보충 의견 등이 함께 담기기도 합니다. 이는 법적 논의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판결의 투명성과 정당성을 높여줍니다.


소부 선고가 가지는 한계와 이점

반대로 소부에서 선고가 이루어진다면, 기존 판례를 기준으로 한 '선례 중심'의 안정적인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신속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사자 입장에선 유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는 사건이 소부에서 조용히 마무리된다면, 법적 기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부족하거나, 법원이 중요한 사회적 질문에 응답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고위공직자나 대기업 총수 등 공적 영향력이 큰 인물들의 사건일 경우, 이러한 판단은 법원의 책임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결정’ 그 자체

전합이든 소부든, 대법원이 이 사건에 대해 조속히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국민은 대법원의 판단을 통해 법률 해석의 기준을 알고 싶어하고, 당사자들은 무한정 기다릴 수 없습니다. 1년이 넘도록 심리가 지연된 지금, 절차적 정의조차 훼손될 우려가 있습니다.

대법원이 전합 회부 여부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오히려 이 사건의 무게를 방증하는 동시에 대법원이 어떤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소송 당사자의 이해와 사회적 요구, 법리적 정합성을 균형 있게 고려하여, 명확한 절차 선택과 함께 투명한 판결을 내려야 할 시점입니다.


사회적 기준의 재정의

전원합의체 선고냐, 소부 선고냐. 이 선택은 단지 절차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사회가 고도화된 법적 분쟁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사법부가 사회의 기준을 어떻게 재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입니다.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은 그 개인들의 삶을 넘어, 대한민국 대법원의 판단 체계와 철학을 묻는 중대한 사건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