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묘기지권 대응법: 지료 협의에서 소송까지, 최근 대법원 판례 기준으로

 


우리 땅에 남의 조상 묘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흔한 일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단순한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인 권리와 의무의 문제로 번질 때 생깁니다. 특히 토지를 사고 팔거나 개발하려 할 때, 예전부터 묘지가 자리 잡고 있다면 얘기는 복잡해집니다. 그런 상황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 바로 ‘분묘기지권’입니다.

예전에는 ‘오래됐으면 어쩔 수 없다’는 식의 관행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이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뒤집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분묘기지권자도 그 땅을 쓴 만큼 ‘지료’, 즉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 법의 목소리입니다.


분묘기지권, 어디까지가 권리일까

분묘기지권이란, 남의 땅에 묘를 설치해두고 그 주변 토지를 일정 범위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민법에 따로 규정은 없지만, 오랜 판례와 관습에 따라 인정돼 온 권리죠.

이 권리는 원래 무상 사용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묘를 쓰는 입장에서는 조상을 위한 일이니 돈 문제를 꺼내는 것 자체가 예의가 아니라 여겨졌던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오랜 묘지라도 토지를 사용하는 이상 ‘지료’를 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최근 대법원 판례의 핵심 변화

핵심은 이것입니다. 남의 땅에 20년 이상 분묘를 설치해 사용했다면, 그동안은 시효취득에 의해 분묘기지권이 생긴다고 보고 지료는 필요 없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최근 판례에 따르면, 토지 소유자가 지료를 청구했다면 그 시점부터는 지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아무리 오랜 세월 동안 그 땅을 써왔더라도, 지금 토지 소유자가 지료를 요구하면 그 요구 시점부터는 분묘기지권자가 돈을 내야 합니다. 이는 과거 판례와는 다른 중요한 변화입니다.


유형별로 달라지는 대응 전략

분묘기지권은 발생 방식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시효취득형, 양도형, 승낙형입니다. 각 유형마다 대응 방식이 달라집니다.

1. 시효취득형

가장 흔한 유형입니다. 토지 소유자의 동의 없이 분묘를 설치하고, 20년 이상 아무런 문제 없이 사용해 왔다면 시효취득으로 분묘기지권이 생겼다고 봅니다. 이런 경우에도 이제는 지료를 요구받으면 그때부터는 내야 합니다.

이럴 땐 지료를 둘러싸고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과거엔 한 푼도 내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얼마를 내라고 하면 당연히 반발이 생깁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지료 청구가 있은 후부터는 분묘기지권자의 부담이 되는 만큼, 현실적인 협상이 필요합니다.

2. 양도형

토지 소유자가 직접 묘를 설치해 사용하다가 그 땅을 타인에게 넘긴 경우에도 분묘가 그대로 있다면 분묘기지권이 유지됩니다. 이때는 분묘기지권이 생긴 시점부터 지료 의무가 있다고 본 판례가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는 비교적 드물며, 과거 약정이나 관습 등이 얽혀 있어 다소 복잡한 논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양도 과정에서 이장 약정이 있었는지 여부를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승낙형

처음부터 토지 소유자의 동의를 받아 분묘를 설치한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애초에 지료 약정이 있었는지, 없었는지가 쟁점입니다. 만약 약정이 있었다면, 그 약정은 소유자가 바뀌어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최근 판례의 입장입니다.

반대로 지료 약정이 없었다면, 이후 지료를 청구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선 상황에 따라 법원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무적으로는 증거 확보가 핵심입니다.


분묘기지권 대응,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먼저 해야 할 일은 분묘의 설치 시기와 경위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묘가 언제 설치되었고, 누구의 동의 하에 이루어졌는지에 따라 법적 권리가 전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은 지료 문제입니다. 상대방이 지료를 청구해온다면, 일단은 법적 근거를 검토해보고 협상에 임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능하다면 문서로 약정을 체결하여 분쟁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만약 협의가 어렵다면 민사소송 절차를 통해 해결해야 합니다. 이 경우 분묘기지권의 존재, 지료 지급 의무의 시기와 범위 등을 다투게 되며, 경우에 따라선 이장 명령이나 토지 인도 청구도 함께 제기될 수 있습니다.


문제를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

분묘기지권 문제는 감정이 앞서기 쉽지만, 이제는 법이 정한 기준이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대법원의 최근 판례는 ‘오래됐으니 그냥 두자’는 식의 태도보다는, 분명한 권리와 의무의 경계를 세우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내 땅이라면 그 땅을 어떻게 쓸지는 당연히 내 권리입니다. 하지만 그 땅에 오래된 분묘가 있다면, 이제는 그에 따른 법적 책임도 정리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내 토지에 분묘가 있다면, 혹은 조상의 묘가 남의 땅에 있다면—이제는 막연한 불안이 아니라 명확한 법리로 접근할 때입니다. 필요한 것은 단 하나, 문제를 덮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마주하는 용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