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합의금, 적정금액의 기준이 없어 생기는 법률적 불공정
한 사람이 폭행을 저질렀습니다. 피해자와의 합의를 위해 돈을 건넸고, 형사재판에서 선처를 받았습니다. 같은 시각, 비슷한 사건을 저지른 또 다른 사람은 합의에 실패해 실형을 선고받습니다. 피해자가 느낀 고통의 크기는 같을 수도 있지만,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핵심에는 '형사합의금의 기준 없음'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법이란 원래 명확해야 합니다. 하지만 형사합의금의 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법률로 정해진 기준이 없기에, 누군가는 200만 원에 합의하고, 또 다른 이는 2천만 원을 제시해도 형사절차에서의 효과는 비슷하게 작용합니다. 이런 모호함은 곧바로 법 앞의 불공정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법으로 규정되지 않은 '합의금'의 존재
형사합의금은 법에 명시된 강제 사항이 아닙니다. 피해자가 입은 손해를 금전적으로 보상함으로써 용서를 구하고, 이를 통해 수사나 재판에서 선처를 받는 일종의 '관행'입니다. 피해자 보호와 피해 회복을 돕기 위한 사회적 장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에는 심각한 법적 모호성이 존재합니다. 형법, 형사소송법 어디에도 "형사합의금의 적정금액은 얼마다"라고 규정된 부분은 없습니다. 피해자와 피의자 사이의 자율적 협의에 맡겨진 이 금액은, 그 자체로 법적 기준이 없는 ‘공백지대’에 존재합니다.
돈으로 형량이 바뀌는 현실
현행 제도에서는 피의자가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했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처벌 수위가 낮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수많은 판결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와 합의했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점을 양형 사유로 적극 반영합니다.
문제는 이 합의가 '돈'이라는 수단으로 좌우된다는 점입니다. 피해자의 감정 회복보다는 금액에 따라 용서의 기준이 달라지고, 결국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그 반대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반성하고 책임을 지려 해도 합의 실패라는 이유로 더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되지요.
이것이 바로 법의 평등성을 해치는 지점입니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정해야 하지만, 합의금이 많을수록 처벌이 약해지는 구조는 '돈에 따라 법이 움직인다'는 인식을 낳습니다.
같은 범죄, 다른 대우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단순 폭행 사건의 경우, 한 사람은 500만 원에 합의하고 기소유예 처분을 받습니다. 다른 사람은 1,000만 원을 제시했지만 피해자의 거절로 합의에 실패했고, 벌금형을 넘어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이 두 사건의 본질적 차이는 무엇일까요? 죄질도, 피해도 비슷했습니다. 오직 '합의 여부'만이 달랐고, 결국 형사처벌의 경중도 달라졌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사람들은 형벌보다는 "얼마를 줘야 끝나는가"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는 사법의 본질과도 배치되는 일입니다.
기준 부재가 만든 불공정, 이제는 손봐야 할 때
형사합의금의 적정금액에 대한 법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겉으로는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자율성이 제도적 불공정을 낳고 있습니다. 돈이 있으면 빠져나오고, 없으면 처벌받는다면, 법의 존재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당연히 형사합의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빠른 보상을 받고 사건을 마무리하는 것은 실질적 치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필요합니다. 유사 사건에 대한 평균 합의금 통계나, 재판부가 합의금 액수를 어느 정도로 고려할지에 대한 명확한 원칙이 제시돼야 합니다.
또한, 경제적으로 열악한 피의자에게는 국가가 일정 부분 조력을 제공하거나, 일정 금액을 초과하는 경우 법원이 별도로 심리해 반영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의 명확성이 사법 신뢰의 출발점입니다
법은 그 자체로 정의를 구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법이 모호할 때, 정의는 반드시 왜곡됩니다. 형사합의금처럼 명확한 기준 없이 사람들 사이에서 자의적으로 거래되는 법률 영역은, 반드시 점검되고 정비되어야 할 분야입니다.
법은 신뢰로 작동합니다. 그리고 그 신뢰는 투명한 절차와 공정한 결과에서 비롯됩니다. 이제는 ‘적정한 형사합의금’이라는 말이 구체적인 수치를 담을 수 있도록, 제도와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할 시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