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관계와 증여세, 인정으로 주고받은 돈의 법적 리스크

 


우리나라처럼 가족 간 정이 깊은 사회에서는 돈이 오가는 일이 예삿일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부모는 자녀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때로는 삼촌이나 외삼촌에게도 손을 내밉니다.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인간적인 정으로 돕는 것이라고 여기십니다. 하지만 세법의 시선은 다릅니다. 

돈이 오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증여'라는 법적 개념이 작동할 수 있으며, 자칫하면 증여세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 인정으로 주고받은 돈이 어떻게 법적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는지, 그 경계를 어디서 어떻게 그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돈을 주고받았을 뿐인데 세금이 발생할 수 있을까요?

세법에서 말하는 증여란, 대가 없이 재산을 이전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대가 없이"라는 점입니다. 즉, 돈을 받는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어떠한 대가도 지불하지 않았다면, 이는 증여로 간주됩니다. 이 기준은 가족 사이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께서 자녀에게 집을 마련하라며 1억 원을 건넸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자녀는 그 돈을 받으면서 갚을 계획도 없고, 차용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다면 국세청은 이를 증여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자녀니까, 부모니까 하고 넘어가지 않습니다. 이는 단순히 법의 원칙 문제라기보다는, 조세 형평성과 탈세 방지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입니다.


증여세가 발생하는 구체적인 기준은 무엇인가요?

가족 간에 주고받는 모든 돈이 세금 대상은 아닙니다. 증여세가 부과되기 위해서는 일정 금액 이상이어야 합니다. 이를 '증여재산공제'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자녀에게 증여할 경우, 성인 자녀에게는 10년 동안 5,000만 원까지는 비과세입니다. 미성년자라면 2,000만 원까지, 배우자 간에는 무려 6억 원까지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한도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증여세가 부과됩니다.

또한, 돈을 빌려주는 형식을 취했다고 하더라도, 차용증이 없거나 이자를 지급하지 않았다면 국세청은 실질을 따져 증여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가짜 대여'로 간주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족 간 금전 거래라 하더라도 상환 계획, 이자율, 계약서 작성 등은 반드시 갖추셔야 합니다.


실제 사례로 보는 증여 리스크

몇 년 전 A씨는 부모님으로부터 사업 자금으로 1억 원을 지원받으셨습니다. 양가 모두 이를 당연하게 여겼고, 차용증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A씨의 사업 소득이 급증하면서 국세청은 자금 출처를 조사하였고, 이 1억 원이 증여로 판단되어 수천만 원의 증여세가 부과되었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 조부모님께서 손주에게 매달 100만 원씩 용돈을 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이 돈이 단순 용돈으로 쓰였더라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손주가 그 돈을 모아 주식에 투자하고 수익을 냈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국세청은 이 자금이 단순 생활비가 아닌 증여로 판단하여 세금을 부과하였습니다.

이렇듯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세금 문제가 무사히 넘어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가족 간 돈거래, 안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돈을 빌려주시는 것이라면 반드시 차용증을 작성하시기 바랍니다. 금액, 이자율, 상환 기간을 명확히 하시고, 실제 상환도 이행하셔야 합니다.

둘째, 일정 금액 이상의 자금이 이전되는 경우에는 10년 기준 증여재산공제 한도를 숙지하시고, 그 범위 내에서 계획적으로 지원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셋째, 계좌이체를 하실 때에는 용도 메모를 남기시기 바랍니다. '생활비 지원', '학비', '병원비' 등 구체적인 설명이 있으면 향후 세무조사 시 입증 자료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넷째, 자녀나 손주에게 정기적으로 금전 지원을 하시는 경우, 자금의 사용처가 사회 통념상 생활비 수준인지, 투자나 저축 등 자산 형성에 쓰이는지를 명확히 구분하셔야 합니다.


인정은 법을 이기지 못합니다

가족 간의 인정은 법보다 앞서야 한다고 생각하시기 쉽습니다. 하지만 세법은 인정이 아닌 증빙을 요구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고액 자산가들의 편법 증여나 부의 대물림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국세청의 감시도 더욱 강화되고 있습니다. 가족 간 금전 거래도 이제는 더 이상 '가족끼리인데 괜찮겠지'라는 말로 넘길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사전에 법적 기준을 숙지하시고, 거래의 실질과 형식을 모두 갖추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굳이 국세청의 오해를 사는 일도, 나중에 억울하게 세금을 부담하실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인정은 따뜻해야 하지만, 법은 냉정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