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 카드빚 책임, 공동책임인가 개인책임인가? – 생활비와 부부의 채무문제

 


한 지인의 집 이야기다. 얼핏 보면 그저 고집 센 남편과 소심한 아내의 조합처럼 보인다. 남편은 통닭 한 마리 사주는 것도 아까워하는 지독한 절약가고, 아내는 평생 직장을 다니며 성실히 살아왔지만 생활비 하나 제대로 손에 쥐어보지 못한 채 살고 있다. 벌이는 각자 다르지만, 돈은 오직 남편의 손에만 있었다. 아내는 쓸 수 없는 월급을 벌었고, 남편은 쓰지 않을 돈을 모았다.

그러다 보니 아내는 소비를 카드에 의존하게 되었고, 결국 카드결제도 부족해 카드론까지 손을 대게 된다. 당연히 혼자 감당하기엔 벅찼고, 몇 차례 남편이 모든 빚을 떠안는 결말이 반복되었다. 이런 일이 세 번도 넘게 반복되었다. 처음엔 부부 간의 갈등으로 끝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 사람들도 한 가지 궁금증을 품게 된다. ‘배우자의 카드빚, 과연 상대 배우자도 법적으로 책임져야 할까?’


부부는 하나라고 했지만, 법은 반드시 둘이다 

민법에서는 부부를 별개의 인격체로 본다. 결혼했다고 해서 법적으로 모든 경제활동이 묶이는 것은 아니다. 즉, 배우자가 진 빚이라고 해도 그것이 공동생활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다른 한 사람에게 법적 책임이 자동으로 전가되지는 않는다.

배우자의 카드빚을 남편이 대신 갚았다면, 그것은 법적 의무가 아닌 선택에 가깝다. 다시 말해 ‘가정의 평화를 위해 자발적으로 해결한 것’일 뿐, 법적으로 반드시 갚아야 하는 책임은 없다. 아내가 카드론으로 발생시킨 채무는 원칙적으로 아내 개인의 채무인 것이다.


예외는 있다 – 민법 제832조

부부가 가정을 이루고 함께 생활하는 이상, 특정한 조건에서는 ‘공동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민법 제832조는 ‘일상 가사에 관한 법률행위’에 대해 부부가 연대책임을 진다고 규정한다. 쉽게 말해, 가정의 일상생활을 위해 발생한 지출이라면, 설사 배우자 몰래 한 것이라도 서로 책임져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카드빚도 일상 가사일까? 

핵심은 지출의 성격 그렇다면 카드결제나 카드론도 일상 가사로 볼 수 있을까? 핵심은 ‘지출의 성격’이다. 생활비, 아이 학원비, 병원비, 식비 등 가정을 꾸리기 위한 필요 지출이라면 일상 가사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사치성 소비나 개인적인 용도의 지출이라면 남편은 이를 이유로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누가 봐도 생활비였다면? 

사례 속 아내의 카드 사용 목적이 생활비였다면, 법적으로 남편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실제로 대법원도 ‘일상 가사 범위에 해당하는 채무는 부부가 연대하여 책임진다’는 취지의 판결을 여러 차례 내려왔다.

하지만 그 책임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카드 사용 내역, 사용처, 시기, 금액 등 구체적인 사정이 입증되어야 한다. 무턱대고 ‘생활비였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다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특히 카드론처럼 금리가 높은 금융상품을 이용한 경우, 법원은 더욱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한다.


배우자의 동의 없이 대출을 받았다면? 

카드론은 보통 고금리 금융상품이며, 대출 과정에서 본인 확인 절차가 필수다. 남편 명의가 아닌 이상, 남편은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다. 즉, 법적으로 보증도, 연대도 하지 않은 셈이다. 이 경우 남편에게 채권자가 직접적인 청구를 하기는 어렵다. 결국 앞서 말했듯, 갚을지 말지는 도덕과 감정의 문제이지 법의 문제가 아니다.


반복되는 문제를 막으려면? 

이처럼 반복적인 카드빚 문제는 단순한 생활 습관의 차이를 넘어서 가정의 재정 구조 자체를 흔들 수 있다. 법적 책임 여부를 떠나, 이런 문제는 결국 부부 간의 재정 분담에 대한 합의가 부재했기 때문에 생긴다. 생활비를 포함한 가계 지출을 어느 한 사람이 전적으로 통제하는 구조는 쉽게 균형을 잃는다.

가장 현명한 해결책은 가계 재정을 투명하게 공유하고, 각자의 수입과 지출을 명확히 구분하되, 공동의 지출 항목은 함께 책임지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서로의 신용카드 내역을 확인한다’는 단순한 원칙만으로도 많은 문제가 예방된다.


법보다 앞서야 할 상식 

배우자의 카드빚을 무조건 함께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정을 위한 지출’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법은 감정을 보호하진 않지만, ‘공동의 책임’이라는 개념 아래 때로는 그 경계를 허물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서로의 경제관을 존중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이다. 법이 개입하기 전, 스스로의 선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