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핵심 쟁점: 사용자 범위 확대와 노동쟁의 정의 변화
노란봉투법이 다시 입법의 문턱에 섰습니다. 노동계의 염원과 경영계의 반발이 맞서면서 사회 전체가 다시 이 법의 방향성과 실효성을 두고 논쟁 중입니다. 이 법은 그 이름부터 시민의 자발적 연대에서 비롯된 상징성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징만으로 법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본질은 결국 조문에 담긴 변화이며, 그 변화가 실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냉정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이번 개정안의 가장 큰 변화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용자'의 범위를 넓힌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쟁의'의 정의를 바꿨다는 점입니다. 이 두 가지가 무엇을 의미하고, 왜 지금 첨예한 갈등의 중심에 있는지, 법률가의 시선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실질적 사용자, 그 불명확한 경계
현재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사용자를 근로계약을 체결한 당사자, 즉 사업주나 고용주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하청, 파견, 위탁 등 고용 구조가 다층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이 정의가 현실과 맞지 않다는 비판이 있어 왔습니다.
노란봉투법은 이 점을 바꾸고자 했습니다. 개정안은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까지 사용자의 범주에 포함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정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실질적 지배력'이라는 표현이 갖는 추상성입니다.
예를 들어 대형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간의 관계, 본사와 가맹점 간의 관계처럼 계약 구조는 독립적이지만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많은데, 이들 모두가 사용자로 분류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결국 누가 교섭 당사자인지를 두고 현장에서 큰 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단체교섭 창구 단일화가 의무인 현실에서, 교섭 상대방이 모호하다면 제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노동쟁의 대상 확대의 법리적 충돌
두 번째 변화는 노동쟁의의 정의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법은 노동쟁의를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분쟁'으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이익분쟁만을 인정하고, 체불임금이나 부당해고 같은 권리분쟁은 노동쟁의로 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은 이 정의에서 "결정"이라는 단어를 제거했습니다. 즉, 근로조건과 관련된 모든 분쟁을 쟁의행위의 대상으로 넓히겠다는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노동자의 권리 보장 강화처럼 보이지만, 이는 헌법과 판례에 기반한 기존 법리와 충돌합니다.
대법원은 오래전부터 노동쟁의는 이익분쟁에 한정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헌법이 정한 쟁의권 보장의 전제이기도 합니다. 권리분쟁은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할 사안이지, 쟁의행위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현재의 법리 구조입니다. 이를 바꾸려면 단순한 법률 개정만으로는 부족하고, 헌법 해석의 변경이나 새로운 법체계의 정립이 필요합니다.
또한 권리분쟁까지 쟁의행위로 인정되면, 사용자 입장에서는 법적으로 보장된 경영 행위에 대해 예측 불가능한 대응에 직면하게 됩니다. 해고, 인사, 징계 등 관리권 전반이 교섭 대상이 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노사 간의 권한 분배에 큰 균열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현실적 입법과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
노란봉투법이 출발하게 된 계기는 분명합니다.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로 생계를 위협받는 노동자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던 시민들의 의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법이 감정을 담는 그릇이 될 수는 없습니다. 감정은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법의 완성은 결국 구체적인 조문과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에 달려 있습니다.
사용자 개념의 확대는 비정규직 보호라는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려는 시도입니다. 노동쟁의 정의의 변화는 노조의 교섭력 강화라는 맥락 안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법리적 정합성과 행정적 실현 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습니다.
입법은 단지 이상을 담는 일이 아니라, 이상을 현실로 연결하는 기술입니다. 노란봉투법의 조문 하나하나가 그 기술로 작동하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공론화입니다. 법은 시민 모두의 삶을 바꾸는 도구입니다. 그만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다듬어져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