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동거인의 법적 권리: 사실혼과 생활동반자 제도의 현실적 차이
요즘 사람들의 삶은 더 이상 한 가지 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도 함께 살기로 한 사람들, 다시 말해 '비혼동거인'이라는 삶의 형태가 점점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법적으로 어떤 권리를 가질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할 것입니다.
동거는 생활의 방식이지만, 법은 이를 '관계'로 해석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그 관계가 법적으로 어떤 지위를 가지는가 하는 점입니다. 비혼동거인들이 어떤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지금 논의되고 있는 생활동반자 제도는 기존의 사실혼과 어떻게 다른지를 차근히 살펴보겠습니다.
사실혼: 법적 보호는 있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사실혼이란 법률혼, 즉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부부처럼 공동 생활을 하는 관계를 말합니다. 대법원은 사실혼의 요건으로 일정한 혼인의사와 동거, 그리고 사회적 인정을 기준으로 봅니다.
사실혼 관계로 인정되면 민법상 일정한 권리가 주어집니다. 예컨대 이별할 경우 위자료나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고, 일부 상황에서는 유족급여와 같은 권리도 인정됩니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상속권은 부여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함께 수십 년을 살았더라도 상대방이 사망했을 때 법적으로는 남이 되는 셈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입증입니다. 법적으로 부부가 아님을 전제로 시작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사실혼임을 주장하려면 병원 진료 동의나 가족행사 참여 내역, 동거 기간 등에 대한 자료를 직접 제시해야 합니다. 이는 사후 분쟁이 발생했을 때 현실적인 어려움을 수반합니다.
생활동반자 제도: 가족 개념을 재정의하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최근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것이 바로 '생활동반자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혼인 여부나 성별, 혈연 관계를 불문하고 두 성인이 함께 살고 돌보는 관계임을 등록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기존의 민법상 가족 개념이 포괄하지 못했던 다양한 삶의 형태를 제도화하자는 시도인 셈입니다.
생활동반자 등록이 가능해지면, 병원에서 수술 동의서를 작성하거나, 임대주택에 함께 입주하거나,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도 가능합니다. 또 출산휴가나 가족돌봄휴가 등 직장 내 제도도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상속 문제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최소한 사실혼보다도 명확한 법적 근거가 생긴다는 점에서 한 걸음 나아간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생활동반자 제도는 자발성과 평등성을 전제로 합니다. 관계 해소도 비교적 간편하며, 혼인과 달리 서류상 해지 신고만으로 종료가 가능합니다. 이는 법적 절차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다양한 동거 형태에 적합한 유연한 제도라 할 수 있습니다.
법과 현실 사이, 아직은 풀어야 할 숙제
문제는 제도 자체가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생활동반자법은 몇 차례 발의되었지만, 보수적인 정치 현실과 종교계의 반발 등으로 인해 통과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가족 형태를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가 커지고 있고, 최근에는 동성 커플에게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하는 법원 판결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판례들은 아직 법이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을 조금씩 보완하는 움직임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방향은 궁극적으로 생활동반자법의 입법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법은 이제 더 이상 한 발 늦은 대응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법은 시대의 거울입니다. 동거, 사실혼, 생활동반자라는 말들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시대에, 그에 걸맞는 제도적 준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제는 법도 사랑과 동거의 다양한 형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