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층수 다른 이유, 도시계획과 부동산 시장의 숨은 이야기

 


아파트를 둘러보면 같은 건설사의 단지인데도, 어떤 곳은 15층, 다른 곳은 35층에 달하는 경우를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같은 브랜드인데 왜 높이가 다를까요? 단순히 설계자의 취향이나 땅값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속에는 법과 제도, 도시계획, 그리고 시장 논리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마주하는 아파트의 높이, 그 차이는 ‘보이지 않는 법의 작용’과 ‘지역의 사정’에 따라 결정된 결과입니다.


층수 제한, 법과 제도의 정밀한 계산

아파트 높이를 결정짓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바로 법입니다. ‘건축법’은 물론이고,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그리고 각 지방자치단체가 정하는 ‘도시계획조례’까지, 여러 법령이 층수에 영향을 미칩니다.

대표적으로 용적률과 건폐율이 있습니다. 용적률은 대지 면적 대비 건축 연면적의 비율을 뜻하는데, 이 수치가 높을수록 건물을 더 높게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용적률은 토지의 용도지역에 따라 제한됩니다. 예를 들어 제1종 일반주거지역에서는 100~200% 수준의 용적률만 허용되는 반면, 준주거지역이나 상업지역에서는 300% 이상도 가능하기 때문에 고층 건축이 용이해집니다.

지자체는 여기에 추가로 층수 제한을 두기도 합니다. 경관 보호, 교통 혼잡, 지역 특색 보존 등의 이유로 법적 기준보다 더 엄격한 제한을 적용하기도 하죠. 서울, 부산, 대전 등 대도시는 특히 도심의 스카이라인을 고려하여 층수에 민감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항공고도 제한과 군사보호구역, 의외의 제한 요인들

건축 관련 법 외에도 예기치 못한 규제들이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항공고도 제한’입니다. 김포공항, 대구공항처럼 도심에 가까운 공항 주변 지역은 항공기의 안전 운항을 위해 일정 높이 이상의 건축이 제한됩니다. 이 때문에 해당 지역의 아파트는 일반적인 도시보다 낮은 층수로 설계됩니다.

군사시설 보호구역도 예외가 아닙니다. 주요 군사시설 근처에서는 고층 건물이 레이더나 감시 장비의 기능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층수를 제한받습니다. 이러한 규제는 일반 소비자가 알기 어려운 정보이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부동산 가치를 판단할 때 간과되기 쉽습니다.


일조권과 조망권, 법이 보장하는 ‘햇빛 받을 권리’

층수 결정에는 인근 주민들의 권리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대표적인 것이 ‘일조권’입니다. 대한민국 건축법은 겨울철 특정 시간대에 일정 시간 이상 햇볕이 들도록 아파트 간 간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높은 아파트가 주변 건물의 일조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조망권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비록 법적으로 명확히 보장된 권리는 아니지만, 조망을 가로막는 고층 건축에 대해 지역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할 경우, 지자체는 층수를 조정하거나 설계를 변경하도록 요구하기도 합니다. 특히 바다나 강을 조망할 수 있는 지역에서는 조망권 분쟁이 매우 민감한 이슈입니다.


경제성 판단, 건설사가 계산하는 ‘최적의 층수’

법과 규제를 넘어서는 또 하나의 요소는 사업성입니다. 건설사는 아파트를 지을 때 단순히 층수를 높이기보다는, 수익성과 공사비, 분양 수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적의 층수를 설정합니다.

고층일수록 같은 대지에 더 많은 세대를 넣을 수 있어 수익이 늘어날 수 있지만, 30층을 넘기 시작하면 구조 설비 강화, 소방 안전시설 설치, 승강기 추가 등으로 건축비가 폭증합니다. 특히 고층 아파트는 공사 기간도 길어지고 리스크도 커지기 때문에, 지역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소비자 취향도 고려 대상입니다. 최근에는 중저층 아파트가 선호되는 지역도 많아졌습니다. 특히 교외나 택지지구에서는 15~20층 사이의 중간 높이 아파트가 조용한 환경과 안정감을 주는 장점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도시계획이 결정하는 지역별 개발 전략

각 도시가 설정한 ‘도시계획’은 아파트 층수 차이를 만들어내는 핵심입니다. 도시계획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미래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청사진입니다. 어느 지역은 주거지로, 어느 지역은 상업 중심지로, 또 어떤 곳은 자연 보존지로 구분하여 개발 방향을 설정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층수 제한이 설정됩니다. 예를 들어, 고양시의 일부 지역은 한강 조망을 위해 저층만 허용되며, 성남 판교 일대는 기업 단지와 주거지를 조화롭게 배치하기 위해 층수를 분산시킵니다. 반면 송파구나 마포구 일부 지역처럼 교통이 뛰어나고 인프라가 집중된 곳은 초고층 아파트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도시의 효율을 높이기도 합니다.

도시계획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 지역의 개발 수준과 부동산 가격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같은 건설사 아파트라도, 서울과 지방의 층수가 확연히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파트 층수, 단순한 높이 차이가 아닙니다

아파트의 층수는 건축 설계자의 감각이나 건설사의 취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법률, 제도, 도시의 전략, 주민의 권리, 시장의 논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집의 높이는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법과 행정의 산물입니다.

앞으로 새 아파트를 분양받거나 매매를 고려할 때, 단순히 브랜드와 평형만 볼 것이 아니라, 왜 이 단지는 이 층수로 지어졌는지를 함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 숨겨진 지역의 이야기와 도시의 미래가 담겨 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