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공정법 논란, 디지털 규제와 한미 무역 갈등의 접점
거대 플랫폼의 그늘과 소비자의 불안
스마트폰을 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화면, 검색창, 쇼핑몰, 동영상 서비스.
우리가 매일같이 사용하는 이 거대 플랫폼들은 이제 단순한 인터넷 서비스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정보 흐름과 소비 구조를 좌우하는 거대한 ‘인프라’가 되었습니다.
편리함의 이면에는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소비자의 선택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제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한 플랫폼에서 검색을 하면 그 회사가 직접 운영하는 서비스가 상단에 노출됩니다.
비슷한 기능을 하는 중소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는 하단으로 밀려나 소비자의 눈에 잘 띄지 않죠.
이는 단순한 노출 순서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경쟁의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입니다.
이 같은 셀프 선호(Self-preferencing) 관행이 누적되면, 소비자는 사실상 선택권을 빼앗기고, 시장은 소수의 거대 플랫폼에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플랫폼 공정법의 핵심 조항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플랫폼 공정법입니다.
이 법안은 일정 규모 이상의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에게 사전규제를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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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선호 금지: 자사 서비스나 제품을 경쟁사보다 우대하는 행위를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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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적 묶음 판매 금지: 특정 서비스 이용을 위해 다른 서비스를 강제로 결합 판매하는 행위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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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공유 의무: 플랫폼 내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거래 파트너와 공정하게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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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자 전환권 보장: 소비자가 다른 플랫폼으로 손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데이터 이동성 확보
이 법은 EU의 "디지털 시장법(Digital Markets Act)"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공정거래위원회가 감독기관이 되어 규제와 제재를 담당하게 됩니다.
소비자 보호의 법적 의의
법률적으로 볼 때 플랫폼 공정법은 단순히 기업 간의 경쟁 구도만을 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본질은 소비자의 권익 보호에 있습니다.
공정거래법이나 표시광고법이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 뒤 사후적으로 제재하는 방식이라면,
플랫폼 공정법은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위험을 차단하는 사전규제 방식입니다.
이는 현대 시장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는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소비자가 모든 거래 과정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선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법이 플랫폼의 행위를 미리 제어해, 소비자가 왜곡된 정보 환경에 놓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하원의 반발과 무역 갈등 가능성
문제는 이 법안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세계적인 플랫폼 사업자 대부분이 미국 기업이고,
플랫폼 공정법의 직접적인 규제 대상이 사실상 이들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하원 법제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이 법이 미국 기업에 불리한 차별을 초래할 수 있으며, 무역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한국 정부에 전달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법률 논쟁을 넘어, 한미 무역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국제통상법적으로도 민감한 문제입니다.
WTO 협정과 자유무역협정(FTA)은 특정 국가 기업에 불리한 차별 규제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소비자 보호라는 공익 목적과 무역 규범 준수 사이에서 정교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공정경쟁 확보를 위한 길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법안 설계 과정에서 규제의 명확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규제 대상이 되는 ‘특정 규모 이상 플랫폼’의 기준과 규제 행위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국제 분쟁 가능성을 줄일 수 있습니다.
둘째, 투명한 집행 메커니즘이 필요합니다.
규제가 단순히 외국 기업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외 모든 대형 플랫폼에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셋째, 소비자 참여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플랫폼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신고, 피해 구제, 정책 개선 제안 등을 소비자가 직접 제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면, 법이 형식적 규제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권리 보호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남은 과제와 전망
플랫폼 공정법은 분명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새로운 경제 환경에서 필요한 법입니다.
그러나 이 법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국제 무역 규범과의 정합성을 확보하고,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공정경쟁은 단순한 경제 가치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건강성을 지탱하는 기반입니다.
한국이 플랫폼 공정법을 통해 소비자의 권리를 확고히 하면서도,
동시에 국제사회에서 법치와 공정무역의 원칙을 지키는 모범 사례를 만들어낸다면,
이 논란은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규범 탄생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입니다.